문학이 타오르듯 ‘좋은 정치’도 타오르길
문학이 타오르듯 ‘좋은 정치’도 타오르길
Blog Article
2018년 10월15일(현지시각) 프랑스를 국빈 방문한 문재인 전 대통령이 파리 개선문 아래 무명용사의 묘 ‘꺼지지 않는 불'에 참배했다. 신동호 제공
공군 1호기가 프랑스 파리로 향하는 동안 미열이 있었다.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나는 이탈리아 로마의 바티칸 일정,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참석을 위한 벨기에 방문, 기조연설을 해야 하는 P4G(녹색성장과 글로벌 목표 2030을 위한 연대) 정상회의가 열리는 덴마크까지. 2018년 10월은 그야말로 외교 강행군을 수행하던 때였다. 여섯 개의 중요 연설문과 기고문 하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글 초안과 공개할 수 없는 정상회담 자료를 포함해 서른 개 10만원 대출
가까이의 문서를 가방에 챙겼다. 문재인 대통령은 순방 전에 모든 문서의 검토를 완전히 마친다. 비행기에서도 또 검토한다. 순방을 앞두고 연설비서관실은 초긴장 상태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일까. 벌써 센 강가를 달리고 싶다. 초행길임에도 파리에 대한 짝사랑을 감출 수 없었나보다. 내내 열이 떨어지지 않았다.
파리에 대한 짝사랑… 센 강가를 달특이사항뜻
리고 싶다
2018년 10월 문재인 전 대통령의 프랑스 파리 순방 중 버스에서 찍은 알렉상드르 3세 다리. 이 다리는 프랑스-러시아의 공조를 기념해 1896년 착공했다. 빅토르 위고의 ‘파리의 노트르담’은 1831년 발표됐기 때문에 이 작품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신동호 제공저소득전세자금대출서류
빅토르 위고는 ‘파리의 노트르담’ 3부 전체를 노트르담 성당에 할애한다. 그것은 ‘돌의 광막한 교양곡이요’, ‘진통을 겪은 민중들의 산아(産兒), 한 국민이 남겨놓은 공탁물’이다. ‘한 시대 모든 힘의 추렴으로 이루어진 경이적인 산물’이라는 표현에서 노트르담에 대한 위고의 경외심이 느껴진다. 위고취업한
는 뒤에 노트르담을 둘러싼 15세기 파리의 조감을 소설에 덧붙였는데, 마치 옛 지도를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설명하는 듯하다. 노트르담이 있는 시테섬은 ‘마치 센강 한복판으로 물결 따라 흘러가다 좌초하여 개흙 속에 처박힌 커다란 배같이 생겼다’. 좌안에는 석조의 프티퐁과 목조의 퐁생미셸 다리가 있고, 우안에는 퐁노트르담과 석조의 퐁토샹주, 목조의 퐁토뫼니에 다대학생대출금리
리가 있다. 그 위 모두에 집을 짓고 사람들이 살았다.
위고의 표현에 의하면, 시테의 세 다리가 우안으로 사람들을 토해냈다. 벌통 속 벌집 구멍들처럼 촘촘히 박힌 이 산더미 같은 시민의 주택들은 그 나름대로 아름다웠다는데 그중 하나, 퐁토샹주는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에도 등장한다. 주인공 장바티스트 그르누이의 향수 제조 스승인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발표
주세페 발디니의 집이 퐁토샹주 다리 위에 있었다. 영화 ‘향수’에서 그르누이가 떠나자 이 집이 폭삭 무너져 센강으로 사라지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파리의 노트르담’에서는 사람들이 카지모도가 치는 성당의 종소리를 이 다리 위에서 듣는다.
파리의 10월 새벽은 오래도록 어둡다. 노트르담 성당과 퐁토샹주를 봐야겠다는 일념으로 운동화를 신는데, 개인신용조회정보
전화가 울렸다. 권용일 변호사다. 순방 때마다 공직 기강을 위해 민정수석실에서 인원을 파견한다. 이번에는 선임행정관인 권 변호사 차례였다. “같이 가요” 한다. 파리의 10월은 아직 여름이 떠나지 않았다. 시테섬으로 가는 센 강변으로 새벽녘까지 취객이 잔뜩이다. 권 변호사가 “혹여 사고 나면 안 되니까 도로로 올라가요” 한다. “나쁜 사람들 같지 않아”라고한국신용평가원
답했지만 그는 안 된다며 손을 잡아 이끈다. 다시 보니 젊은 술꾼들이다. ‘미셸을 기다리는 노숙자 알렉스일지 몰라’, 생각한다. 오래전에 보았던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 남자 주인공이다. 샤를 보들레르의 시집 ‘파리의 우울’에서 보았던 시 한 구절도 떠오른다. “이제 취할 시간이다! ‘시간’의 학대를 받는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취해라! 술이무직자 개인회생
든, 시든, 덕이든 무엇이든, 당신 마음대로.” 그들은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마셔 없애버리고 있었는지 모른다, 파리지앵답게.
파리 센강 퐁토샹주에 섰다. 바로 뒤는 퐁노트르담 다리이고 왼쪽 시테섬 오텔디유 병원 뒤로 노트르담 성당 종탑이 보인다. 신동호 제공
네이버할인계산기
베냐민이 발견한 파리의 ‘군중’
샤를 드골보다는 앙드레 말로다. 루이 필리프보다는 그를 몰아낸 1848년 프랑스 2월혁명에 더 관심이 많고, 2월혁명보다 혁명에 참가한 시인 보들레르를 애착한다. 미국 망명이 허가됐지만 프랑스 출국비자를 받지 못해 스페인 국경에서 자살한 발터 베냐민도 있다. 나폴레옹의 웅장한 개선보다 시대 전체를 최대한 입체적으로 바라보았던 베냐민의 느린 산책이 더 좋다. 그는 파리에서 군중을 발견한다. 군중은 19세기 산업의 발명품, 베냐민은 그 안에 파시즘의 징후와 혁명의 가능성 둘 다 있다고 했다. 한나 아렌트는 시적으로 사유하는 베냐민의 재능을 높이 샀다. 그의 부재를 특별히 안타까워했다. “사후의 명성을 시대를 앞서간 사람들에 대한 쓰라린 보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고 쓴다. 생전에 승리하지 못한 프란츠 카프카에게도 해당되는 얘기다. 파리의 새벽에서 ‘역사의 천사’를 떠올린다. 억누르고 있던 문학적 감성이 폭발하고 만다.
대학에 입학하면 산악반에 들어가고 싶었다. 못했다. 비공식 모임에서 사회과학 공부를 했다. 기자가 되고 싶어 들어간 학보사에서도 금방 나왔다. 비공식 모임의 명령이었다. 신춘문예 등단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모더니스트 이승훈 선생님에게 리얼리즘으로 대들었다. 어설픈 배반이었다. 시를 쓰지 않고 대자보와 성명서, 제문을 썼다. 남산 안기부에서의 고문, 국가보안법 위반 구속으로 고생도 조금 했다. 빈번한 퇴직과 구차한 생활 속에서도 민주주의, 남북관계 활동을 떠나지 않았다.
문제는 문학이었다. 불쑥 문학이 가슴에서 올라오면 방황했다. 간혹 전선에서 이탈했다. 이도 저도 제대로 못할 거였으면 일찌감치 문학을 버렸으면 좋았을 텐데, 그게 안 됐다. 예민함을 타고났다. 책을 읽다가 갑자기 기분이 나쁘면 꼭 오탈자가 있다. 상상력이 병이다. 전철역까지 갔다가 가스불을 껐나 생각이 들면 별생각이 난다. 급기야 아파트가 폭발하는 장면이 그려진다. 다시 집으로 가야만 저기 토성까지 간 상상이 끝난다. 문학 안에서 혁명적 발상은 문학 밖에서 대부분 앞뒤 모르는 헛소리였다. 그래도 자꾸 시와 소설에 먼저 손이 가는 건 어쩔 도리가 없었다. 정치적으로 부족하고, 신념이 흔들릴 때마다 꼭 정치적이지 않아도 될 그런 사람도 있고, 비정치적 방법으로 민주주의에 기여할 방법도 있다고, 스스로 다독이곤 했다.
좋은 대통령 vs 좋은 작품… 무엇이 더 세상을 바꿀까
개선문에서 공식 환영식이 있었다. 대통령은 무명용사의 묘 ‘꺼지지 않는 불’에 참배하고, 프랑스의 6·25 참전용사들께 고마움을 전한다. 엘리제궁까지 가는 기마대의 퍼레이드는 근사했다. 두 정상은 기후위기와 자유무역,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은 물론 우주개발 분야까지 협력하기로 합의한다. 개선문 언저리에서 참관하며 생각해본다. 무엇이 더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 될까, 좋은 대통령일까, ‘소년이 온다’일까. 비교 자체가 어불성설이긴 하다. 이제 새로운 대통령에 의해 이전의 합의들이 이어지고 지속되길 앙망한다.
개선문에서 열린 프랑스 방문 공식 환영식. 문재인 대통령이 6·25 참전용사들과 인사하고 있다. 신동호 제공
달리기가 생활의 일부분이 되면서 그쪽으로의 관심도 넓어진다. 울트라 러너 심재덕은 대우조선해양의 현장 노동자다. 기관지확장증 진단을 받고 수술 대신 달리기를 선택한다. 마라톤 풀코스 서브스리(3시간 이내 완주) 기록이 300회가 넘고, 2006년 미국에서 열린 100마일 대회에서 당대 최고의 울트라 러너였던 칼 멜처를 제치고 우승했다. 아마추어 마라톤 대회에서 수차례 우승한 신정식이라는 이름도 가슴에 새겨뒀다. 울산 현대자동차 노동자라는 사실만으로 그를 선망한다. 황영조 선수나 이봉주 선수 모두 말할 수 없이 훌륭하다. 그러나 초보 달리기 수준인 내겐 더 가까이하고 싶은 이는 아마추어 강자들이다. 그들 대신 더 열심히 내란 종식이든 뭐든 해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그들이 달리기에 더 매진해 아마추어들의 희망이 돼주는 것만으로도 우리 사회의 전진이라 우기곤 한다.
위고는 인류가 두 권의 책, 두 장의 유서를 가지고 있다, 말한다. 돌의 성서와 종이의 성서다. 건축물로 쓰인 책을 끊임없이 뒤적이고, 인쇄술이 세우는 건물의 위대함도 부인하지 말라고 한다. 셰익스피어의 대성당에서 바이런의 회교사원까지 종탑들이 세계의 사상 위를 넘쳐흐르고, 책들은 자신만의 집단적인 몫이 있다는 것이 위고의 선언이다. 18세기에는 드니 디드로의 ‘백과사전’을 주었고, 대혁명은 신문 ‘모니퇴르’를 주었다. 하나하나의 정신은 석공이며 문학은 나선형으로 쌓여 올라가는 하나의 건조물이다. 여기에도 쉴 새 없는 활동, 지칠 줄 모르는 노동, 전 인류의 맹렬한 협동, 지성에 약속된 피난처가 있다. 위고는 이것이 인류가 세운 제2의 바벨탑이라고 자신한다.
길은 낯설고, 시간은 부족하고, 어둠이 채 가시지 않아 퐁데자르와 퐁네프 다리까지 달리지 못한다. 퐁데자르는 사랑의 열쇠로 유명하지만 기실 ‘예술의 다리’다. 파리 최초의 철교로 나폴레옹 1세의 의지로 놓였다고 한다. 그렇지만 베냐민은 정확히 알아챈다. “시민계급의 지배 도구로서 국가가 기능하게 될 것을 나폴레옹이 알아차리지 못한 것처럼, 건축가들 역시 철이 건축 분야에서 주도권을 쥐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고 쓴다. 알베르 카뮈와 오노레 드 발자크의 작품에서도 중요한 장소다. 카뮈의 ‘전락’에서 클라망스는 다리 위, 정체 모를 웃음소리를 듣고 스스로에게 유죄를 내린다. 다른 이들이 자신을 통해 위선을 깨닫길 바란다. ‘나귀 가죽’에서 발자크는 도달할 수 없는 어떤 낙원을 흘낏 보았기 때문에 산산이 부서질 수밖에 없는 운명을 이야기한다. “어제 네 시 한 젊은 여인이 퐁데자르 다리 위에서 센강으로 몸을 던졌다.” 다수가 알 수 없는 한 개인의 절망이란 늘 있는 법이다.
내일이 없는 듯, 끝까지 함께 갈 것이다
퐁네프에서 ‘퐁네프의 연인들’의 미셸과 알렉스처럼 목적지 없이 달려보고 싶었다. 혁명 200주년을 기념하는 불꽃놀이를 상상하며 내일이 없는 듯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두 연인의 성장 스토리도 되새겨보고 싶었다. 헤어졌던 두 사람은 퐁네프에서 다시 만난다. 다투다가 알렉스가 미셸을 끌어안고 대책 없이 센강으로 뛰어드는데, 어느 노부부의 배에 구조된다. “이 배 어디까지 가는 거죠?” “끝까지요.” “우리도 함께 가도 되죠?” “물론!”
누구든 자신을 성장시킬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이들만이 뒤늦게 합류해 힘을 배가하고, 또 끝까지 함께 갈 것이다. 탈고를 기다리지 못할 이유란 없지 않을까.
글·사진 신동호 시인·전 대통령 연설비서관
*‘순방지의 새벽을 달리다’는 이번 회를 끝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좋은 글을 써주신 신동호 전 비서관과 애독자 여러분 고맙습니다.